[천자칼럼] 'Sonny' 대신 '성진'

입력 2024-01-09 17:10   수정 2024-01-10 00:12

<제시의 일기>란 책이 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가 1938년 중국에서 딸을 낳고 8년간 쓴 육아일기다. 제시(Jessie)는 딸 이름이다. 양우조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능력 있는 한국인으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딸 이름을 영어로) 지었다”고 썼다. 양우조는 미국 유학파였다.

미국에 살면서 영어 이름을 쓰는 사람이 많다. 외국인들이 한국 이름 발음을 어려워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꼭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인텔 회장을 지낸 앤디 그로브는 헝가리 출신으로 본명은 안드라스 그로프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인도 태생으로 원래 이름은 순다라라잔 피차이다. 미국에 넘어오면서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이름을 바꾼 것이다.

대중에 기억되는 게 중요한 연예계에선 영어 이름 선호도가 더 클 것이다. 물론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이름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올해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단막극 부문 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을 휩쓴 한국계 이성진 감독은 공식 크레디트에 ‘Lee Sung Jin’으로 표기한다. 그는 이민 1.5세로 어릴 적 미국인들이 자신의 한국 이름을 듣고 웃는 게 부끄러워 소니(Sonny)라는 영어 이름을 썼다. 그러다가 2019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타자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부를 땐 미국인들이 실수하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노력한다”며 “내가 좋은 작품을 만들면 미국인들도 한국 이름을 듣고 웃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영화배우 김윤진도 뉴욕예술고 시절 자신의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오프라 윈프리는 이름도 독특하고 발음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다 알지 않느냐”며 “걱정하지 말고 연기나 잘하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자신이 연기를 잘하면 이름이 어려워도 사람들이 알아서 다가온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류로 전 세계에 한국어 공부 열풍이 불고 있는 시대다. 이름보다는 실력이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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